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하이닉스는 상계관세의 거센 파도를 글로벌 우회 전략으로 넘어서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시한폭탄을 안고 있었습니다. 회사의 매출 구조가 'D램(DRAM)'이라는 단 하나의 제품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D램은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메모리로, 당시 PC 시장의 경기 변화에 따라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널뛰기를 했습니다. D램 가격이 폭락할 때마다 하이닉스의 전체 실적이 통째로 흔들리는 고질적인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낸드플래시(NAND Flash)'라는 새로운 영토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블로그를 운영할 때도 하나의 메인 키워드나 단 한 편의 글에만 트래픽을 의존하면, 구글 알고리즘이 바뀔 때마다 전체 방문자가 급감하는 위험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다양한 주제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당시 하이닉스의 생존 전략도 이와 완벽히 일치했습니다. 하지만 2004년 당시 낸드플래시 시장은 이미 도시바와 삼성전자가 특허 장벽을 단단히 쌓아 올린 철옹성이었습니다. 후발주자인 하이닉스가 기술 라이선스 없이 무작정 진입했다가는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만 날리고 퇴출당할 게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하이닉스는 또 한 번 업계를 놀라게 한 '적과의 동침' 전략을 선택합니다. 낸드플래시의 원천 특허를 보유하고 있던 일본의 도시바, 그리고 미국의 샌디스크(SanDisk)와 연이어 기술 상호 라이선스(Cross-License) 및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돈도 없고 세력도 약한 하이닉스가 어떻게 저 거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냐"며 의아해했습니다. 비밀은 하이닉스가 앞서 블루칩 프로젝트 등을 통해 증명해 보인 '세계 최고 수준의 미세 공정 양산 능력'에 있었습니다. 독자적인 설계 특허는 부족하지만, 남들이 설계한 칩을 가장 싸고 빠르게, 그리고 불량 없이 찍어내는 공정 기술만큼은 하이닉스가 독보적이었기에 거대 기업들도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특허 장벽을 뚫어내자마자 이천과 청주의 엔지니어들은 곧바로 초고속 양산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D램을 만들던 기존 라인 일부를 낸드플래시 생산 라인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혼종 공정'을 선보였습니다. 보통 반도체 라인을 새로 깔려면 수조 원의 비용과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지만, 하이닉스 연구원들은 기존 D램 장비의 세팅을 미세하게 조정해 낸드플래시를 동시에 찍어내는 기적적인 효율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현장 연구원들의 기록을 보면, D램과 낸드의 서로 다른 물리적 특성 때문에 초기에는 칩이 타버리거나 데이터가 깨지는 불량이 속출했다고 합니다. 연구원들은 공장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면서 장비의 전압과 화학 물질 투입 타이밍을 마이크로초(100만 분의 1초) 단위로 수정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시장 진입 불과 1년 만에 하이닉스는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리며 순식간에 글로벌 강자로 우뚝 섰습니다.
이 치명적이었던 낸드플래시 시장 진입은 하이닉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침 전 세계적으로 MP3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그리고 스마트폰의 서막이 열리면서 낸드플래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D램에만 목을 매던 천수답 구조에서 벗어나, D램과 낸드플래시라는 강력한 '쌍발 엔진'을 장착하게 된 하이닉스는 비로소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진정한 거인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8편 핵심 요약
하이닉스는 D램에 편중된 매출 구조의 취약점을 극복하고 스마트 기기 대중화에 대응하기 위해 낸드플래시 시장 진출을 단행했습니다.
원천 기술 부족과 특허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도시바, 샌디스크 등 글로벌 선두 기업들과 독보적인 양산 능력을 담보로 기술 제휴를 맺었습니다.
대규모 신규 투자 없이 기존 D램 생산 라인을 가변적으로 활용하는 현장의 공정 혁신을 통해 단기간에 세계 낸드 시장 점유율 상위권에 진입했습니다.
다음 편 예고: 9편에서는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체력을 기른 하이닉스가, 대만의 후발주자들과 일본의 엘피다(Elpida)가 주도한 반도체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글로벌 D램 치킨게임'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최후의 승자가 되었는지 그 처절한 생존 비화를 다룹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존에 잘하던 분야 외에 완전히 새로운 분야나 파이프라인에 도전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당시 하이닉스의 과감한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에 대한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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