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절반을 호령하는 지금의 모습을 1980년대 초반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운 공상과학 소설 같았을 것입니다. 당시 한국은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단순 부품을 조립하거나 세탁기, 냉장고를 겨우 만들던 아시아의 변방 국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룰 이야기는 그 불가능의 영역에 무모하게 첫발을 내디뎠던 1983년 현대전자의 출범 비화입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할 때의 막막함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키워드 분석도 안 되고, 참고할 만한 선발 블로그도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는 기분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1983년 당시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을 때, 사내외의 반응이 딱 그러했습니다.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당시 삼성이 이미 반도체 사업에 착수하며 기틀을 다지고 있던 상황에서, 현대그룹 내부에서는 "우리가 잘하는 건설, 자동차, 조선에 집중해야지 왜 검증되지 않은 첨단 산업에 돈을 쏟아붓느냐"는 반대 여론이 팽배했습니다. 더욱이 현대는 반도체의 'ㅂ'자도 모르는 초보 중의 초보였습니다. 기술도 없고, 장비를 다룰 줄 아는 숙련된 엔지니어도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의 특유의 돌파력이 여기에서 발휘됩니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라는 그의 유명한 어록처럼, 현대는 경기도 이천의 허허벌판 논밭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SK하이닉스 본사가 있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당시 이천 공장 부지는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고 바람이 불면 먼지가 날리는, 첨단 반도체 공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황무지였습니다. 미세한 먼지 하나에도 불량이 발생하는 반도체 라인을 이런 곳에 짓겠다는 것 자체가 당시 전문가들에게는 코미디 같은 일이었습니다.
현대전자가 처음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의 부재였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은 기술 유출을 극도로 꺼리며 한국 기업에 장비조차 제대로 팔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술 자문을 구하기 위해 해외 박사들을 찾아다녔지만, "한국이 반도체를 만드는 것은 손가락으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는 모욕적인 언사만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여기서 현대전자가 선택한 전략은 '맨땅에 헤딩'하는 정면돌파였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현지 법인(HEA)을 설립하고, 밤낮없이 재미 한인 과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삼고초려를 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뛰어들어 달라는 호소에 마음을 움직인 젊은 엔지니어들이 하나둘 이천의 진흙탕 공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는 상태에서 수입한 중고 장비를 밤새 분해하고 조립하며 반도체의 원리를 몸으로 익혀나갔습니다.
당시 연구원들의 수기를 보면,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에 들어가면 기본 12시간 동안 나오지 못해 방광염을 달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흔하게 나옵니다. 에어컨 시설이 미비해 한여름에는 방진복 속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고, 겨울에는 장비가 얼어붙어 입김을 불어가며 기계를 돌렸던 시절입니다.
1983년 2월, 마침내 현대전자가 공식 출범하면서 대한민국의 두 번째 반도체 거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비록 시작은 기술도, 자본도 부족한 후발주자였지만, 이천의 연구원들이 흘린 땀방울은 훗날 세계를 뒤흔들 메모리 신화의 단단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 무모했던 출발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편 핵심 요약
1983년 현대전자의 출범은 그룹 내부의 극심한 반대와 외부의 회의적인 시선 속에서 정주영 회장의 결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경기도 이천의 황무지에 공장 부지를 마련하고, 해외 재미 과학자들을 영입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기술 봉쇄를 뚫기 위해 실리콘밸리 법인을 활용하고 현장 엔지니어들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반도체 생산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다음 편 예고: 3편에서는 현대전자가 마침내 독자 기술로 국산 메모리의 초석이 되는 '64K D램' 개발에 도전하며 겪었던 처절한 실패와 감격의 성공 순간을 다룹니다.
만약 여러분이 1983년 당시 현대그룹의 임원이었다면, 모두가 반대하는 반도체 사업 진출에 찬성표를 던지셨을까요? 여러분의 흥미로운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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