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반도체 역사 시리즈] 3편: 국산 메모리의 초석, 64K D램 개발과 초기 시장 진입의 고통


1980년대 중반, 이천의 황무지에 세워진 현대전자 공장은 불이 꺼질 줄 몰랐습니다. 무모하게 출범을 선언하긴 했지만,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진짜 결과물'을 내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현대전자가 사활을 걸고 도전했던 첫 번째 고지가 바로 '64K D램(Dynamic RAM)'이었습니다. 머리카락 굵기의 수백 분의 일에 불과한 미세한 회로에 6만 4천 개의 비트를 집어넣는 이 기술은,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의 결정체였습니다.

블로그를 처음 키울 때 아무리 좋은 글을 써도 초반에 조회수가 나오지 않아 지치는 것처럼, 반도체 개발 역시 초기에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설계 도면대로 라인을 깔아도 막상 칩을 구워내면 불량률이 99%에 달했습니다. 먼지 하나 없는 클린룸이라고 자부했지만, 미세한 정전기나 장비의 미세한 진동조차도 칩을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원인을 찾지 못해 몇 날 며칠을 공장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은 연구원들에게 일상이었습니다.

게다가 기술 도입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미국 Vitelic사 등으로부터 설계 기술을 도입하긴 했으나, 그것을 우리 공장 장비와 환경에 맞게 최적화하는 공정 기술은 온전히 우리 엔지니어들의 몫이었습니다. 레시피를 받아도 손맛과 불 조절을 모르면 최고의 요리를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습니다. 엔지니어들은 밤마다 미국 법인과 교신하며 밤낮이 바뀐 생활을 했고, 장비가 고장 나면 해외 기술자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 직접 기계를 뜯어보며 독학으로 기술을 체득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이천 공장의 생산 수율(불량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이 너무 낮아 "이러다 투자금만 날리는 것 아니냐"는 안팎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경영진의 압박과 현장 연구원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던 1984년 말, 마침내 현대전자는 자체 생산한 64K D램의 동작 시험에 성공하게 됩니다. 삼성이 64K D램을 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발주자인 현대도 순수 독자 공정으로 메모리를 찍어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은 너무나도 짧았습니다. 제품을 간신히 만들어 시장에 내놓으려 하자, 이번에는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불황'이라는 거대한 벽이 가로막았습니다.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미국과 일본의 거대 기업들이 후발주자인 한국 기업들을 고사시키기 위해 무자비한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인 것입니다. 64K D램 한 개당 3~4달러 하던 가격이 불과 몇 개월 만에 30센트 수준으로 폭락했습니다. 파는 족족 적자가 나는 잔혹한 치킨게임의 시작이었습니다.

생산하면 할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 속에서 현대전자는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기계를 멈춰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여기서 멈추면 영원히 도태된다는 위기감이 더 컸습니다. 현대는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공장을 돌려 공정 노하우를 쌓았고, 동시에 다음 세대인 256K D램 개발에 곧바로 착수하는 정면돌파를 선택했습니다. 이 시기의 고통스러운 버팀과 눈물겨운 단가 절감 노력은 훗날 하이닉스가 어떤 위기에서도 살아남는 지독한 생존 DNA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편 핵심 요약

  • 현대전자는 기술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미국의 설계 기술을 도입, 현장 엔지니어들의 사투 끝에 64K D램 자체 공정 생산에 성공했습니다.

  • 개발 성공 직후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주도한 글로벌 반도체 가격 폭락(치킨게임)으로 인해 극심한 초기 적자와 경영 위기를 겪었습니다.

  • 적자 속에서도 생산을 중단하지 않고 공정 최적화를 지속하며 차세대 제품(256K D램)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는 정면돌파로 생존 기반을 다졌습니다.

다음 편 예고: 4편에서는 암흑 같은 가격 폭락기를 버텨내고 비상하던 현대전자가, 1997년 외환위기(IMF)라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라이벌이었던 LG반도체와 강제로 합병하게 되는 운명의 '빅딜' 비화를 다룹니다.

 만약 여러분이 만드는 제품이 팔 때마다 손해가 난다면, 여러분은 투자를 계속 이어가실 수 있으신가요? 당시 엔지니어들의 독한 집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댓글로 의견을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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